일과 휴가, 휴가와 일
워크(Work)와 베케이션(Vacation)의 합성어인 ‘워케이션(Workcation)’은 ‘디지털 노마드’라는 이름으로 예전부터 존재했던 개념이지만, 팬데믹 시대로 넘어오며 여행의 형태라기보단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EDITOR 박진명]
▒ 여행에 미치다(Youtube)
원하는 곳에서 업무와 휴가를 동시에 할 수 있다면? 워케이션은 예전부터 ‘디지털 노마드’로 통했던 라이프스타일이 굳어지며 만들어진 합성어다. 일본에서 시작된 이 근무 방식은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처럼 사람과 대면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자 그 개념과 실천이 더욱 선명해졌다. 작년에 이어 많은 회사들이 재택근무를 선호하게 되었고, 인터넷 연결과 노트북만 있다면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를 살짝 비틀어 휴가를 보내며 일을 하는 ‘워케이션’으로 돌파구를 찾은 것.
IT회사에 근무하는 A씨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본격적으로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회사의 근무 제도가 아예 주2회 출근으로 바뀌었다. 본인이 정한 출근 요일에만 회사에 가면 되고 나머지는 어디서 일을 하든 업무를 해내기만 하면 된다.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동안 그는 집 안에서의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강원도 강릉에서 한 달 살이를 하며 워케이션을 즐긴 경험이 있다. 업무의 시작과 종료 시간을 공유하고 회의 일정이 생길 경우 화상으로 참여하면 되기에 나머지 시간에 여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할 땐 카페에서 일하는 것도 조심스러웠지만, 한두 시간 정도 카페에 머무를 수 있게 되니 호텔이 조금 지겨워지면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차근차근 그날의 할 일을 해냈다. 여행지에서 일이라니,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A씨는 ‘천국과 지옥, 그 사이’라고 표현했다. 시간과 공간으로부터는 자유롭지만 업무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고, 사무실이 아닌 공간에서는 집중력의 한계가 있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다음에 다시 워케이션을 계획하게 된다면 두 가지를 꼭 생각하고 싶다고 했다. 첫 번째는 규칙성이다. 이를테면 오전에는 휴식, 오후에는 근무라는 규칙을 갖고 임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커뮤니티. 공유 오피스가 있는 여행지로 가서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게 효율적일 것이라고 전했다.
▒ 롯데호텔 수퍼리어룸
변화는 어느 한순간에 일어나는 게 아니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근무 제도가 바뀌었지만 시행착오를 몸으로 부딪혀가며 더 나은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진화하고 있다. 여행에 가치를 둔다면 시공간의 제약을 없애보는 것도 좋다. 그래서인지 호텔이나 여행 커뮤니티에서는 워케이션에 초점을 둔 프로모션을 개발하고 있다. 롯데호텔 서울의 경우 ‘서울 시내 특급호텔에서 한 달 살기’를 콘셉트로 ‘원스 인어 라이프’ 장기 생활 상품을 선보인다. 피트니스나 수영장 등 호텔 부대시설을 무료로 이용하며 30박을 묵을 수 있는 상품으로, 7월 15일까지 진행한다. 또 여행 콘텐츠 브랜드 ‘여행에 미치다’에서는 <오지는 사무실로 출근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이는 강원도 양양에서 워케이션을 즐기는 내용으로, 여행 콘텐츠를 제작하는 ‘여미크루’가 여행지에서 어떻게 업무를 해나가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심지어 워케이션을 위해 비자를 새로 만든 나라도 있다. 북대서양에 위치한 영국령 버뮤다는 1년까지 거주할 수 있도록 비자 기간을 늘렸고, 모리셔스와 태국은 30일 무비자에서 60일로 변경했다. ‘묵는 곳’에서 ‘사는 곳’으로 시야를 확대하며 코로나 시대의 환경 변화를 적극적으로 꾀한 여행 신이 앞으로 또 어떤 돌파구를 찾아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