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기식’하면 ‘필름 사진’, ‘자연’, 이런 키워드가 생각난다. 특히 1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한 그루의 나무를 촬영한 시리즈가 좋았는데, 계절에 따라 나무의 달라지는 모습이 재밌더라. 나무를 좋아하나?
-꽃도 찍고 나무도 찍는다. 내가 찍고 싶을 때 언제든 만날 수 있는 피사체가 꽃과 나무였다. 그리고 같은 나무라고 해도 매일 다른 얼굴을 보여주니 소재로 삼기 좋았다. 변화가 있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 피사체로서 자연을 좋아하는 이유다. 나는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다. 사진과의 교양 사진 과목을 들으며 혼자 연습이 필요했는데 그 때 처음 꽃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을 연습할 때 상황이 바뀌면 어렵다. 이렇게 찍어보고 다시 찍어보고 해야하는데 사람은 복잡하지 않나. 약속하고 부르고 준비하고 만나고. 거창한 것보다 내가 부지런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게 좋았고, 그렇게 선택한 소재가 자연이었다.
나무, 꽃, 그리고 그 다음은 무엇이 있나
-최근 촬영한 건 물이다. 출근길에 강변북로를 거쳐 오는데, 그 한강변에서 주로 찍는다. 태양빛에 반사되는 물의 표면 시리즈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고, 그 일부를 동곡미술관에 전시해두었다. 시간이 쌓이는 것만큼 강한 힘은 없다고 느끼는 중이다. 같은 자연이라고 해도 시간에 따른 변화를 관찰하는 일은 무척 흥미롭다. 요즘은 플라타너스를 찍고 있다. 스튜디오 근처에 있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플라타너스 나무지만 매일의 다른 얼굴을 발견하는 일이 즐겁다.
사진 말고, 원래 전공은 무엇이었나
-멀티미디어 디자인이다. 휘발되는 작업이 별로 내키지 않아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리다 보니 사진을 선택하게 되었다.
사진가 표기식으로 알려진 계기가 있나. 다른 사진가들처럼 어시스트 기간을 거치거나 하지 않았을텐데. 시작이 궁금하다.
-처음에는 취미 사진가였다.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하며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그 사진들을 패션 매거진에 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매체와의 인연이 시작되어 조금씩 내 사진들을 소개할 수 있었고, 그 사진들을 본 매니지먼트사 비주얼 디렉터가 연락을 해와 샤이니 앨범 자켓 촬영을 맡으며 본격적인 사진가로 데뷔했다.
필름을 고수하는 편인가?
-필름과 디지털 다 좋아한다. 재료에 따라 표현하는 게 다르니까.
즐겨 쓰는 카메라가 있나?
-다양한 기종을 사용한다. 가방마다 다른 카메라를 넣어두는데 그 때 그 때 가방에 들어 있는 것들로 촬영하는 편이다.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의도하지 않은 카메라의 조합을 즐긴다. 노출 테스트만 하고 뷰 파인더를 보지도 않고 찍기도 한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들은 매우 신선한 앵글을 가졌다.
어떤 사진을 가장 좋아하나
-지나가다 우연히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찍은 사진이다. 그들은 내가 사진가라는 사실을 모르고 부탁하는데, 어떤 사진이든 고마워한다. 찍는 나도 즐겁고, 사진을 보며 좋아하는 그들을 볼 때 행복하다.
나에게 희열을 주는 건
-아름다운 순간에 운 좋게 카메라를 갖고 있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일례로 <나무가 서있다, 자라는 나무가 서있다> 시리즈를 촬영할 때가 기억난다. 첫눈 오는 날 눈을 찍고 싶어서 나무가 있는 한강으로 달려갔는데 노출을 잘못 재서 실패했다. 첫눈은 실패했고, 다시 한 번 눈이 오길래 자전거를 타고 재빠르게 출발했는데 가는 도중 눈이 그쳐버렸다. 허탈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눈은 포기하고 그냥 나무나 찍자 하고, 나무만 찍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졌다. 함박눈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예뻤고, 너무 신나서 촬영했던 기억이 있다.
사진 말고 다른 취미가 있나
-자전거 타는 것. 한 때는 자전거로 전국을 여행하며 사진으로 기록해두기도 했다. 자전거를 탈 때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흩어지는 게 즐겁다. 가장 좋아하는 목적지는 한강이다. 하늘을 잘 볼 수 있고 나무도 있고, 촬영하기 좋은 소재가 무궁무진해서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깝고.
표기식의 사진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하나
-광주 <동곡 미술관>에서 3월 14일까지 전시중이다. <동곡, 빛이 내린다>라는 제목으로 윤슬 시리즈를 걸어두었다. 새로 개관한 미술관이라 주소를 찾는 게 좀 어려운데, 광주 광역시 광산구 어등대로 529번길 37 <동곡 미술관>으로 검색하면 된다. 미술관에 가는 것이 조금 어려운 시기이다 보니, 인스타그램 아카이브를 팔로우하거나 29cm 몰에서 판매중인 몇 작품으로 대신 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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