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하동의 컬처 라이프
무목적
경복궁을 따라 누하동으로 진입해 큰 도로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보이는 건물이 있다. 4층에 있는 유명 카페 ‘대충유원지’가 들어선 그 건물은 이름조차 신비한 ‘무목적’. 간판 하나 걸어놓지 않고도 건물 그 자체로 존재감을 마구 발산한다. 있으나 마나 한 건물보다는 서촌이라는 동네의 맥락에 잘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권택준 대표는 외부터 건물의 콘텐츠까지 세세하게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세밀한 감각은 외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콘크리트를 다 굳힌 상태에서 일부러 스크래치를 내 동네의 결을 해치지 않도록 했다. 또 재미있는 점은 건물의 형태다. 밖에서 보면 하나의 건물처럼 보이지만 본래 지대가 다른 두 건물을 이은 것이다. 건물 안 머무르는 장소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 이는 굽이굽이 이어져 있지 않은 서촌의 골목길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는 건물의 형태만큼이나 채워져 있는 콘텐츠도 흥미롭다. 3층 전시관은 본래 갤러리를 목적으로 만든 공간이 아니었다. 오픈 후 잠시 비어 있던 시기에 4층 카페에 들렀다가 3층의 빈 공간을 보게 된 작가가 대관 문의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고. 첫 전시를 할 때만 해도 조명이나 에어컨 등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았지만, 오히려 투박하고 컨템포러리한 매력에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3층에서 전시를 보고 4층 카페에 가서 커피나 와인을 마시고, 1층 핸드크래프트 숍인 팀블룸에서 소품을 보는 등 사람들이 오고 가며 건물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 주소 :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46 무목적 3층
▒ 전화번호 : 02-792-9075
이상범 가옥과 화실
누하동 골목 사이에 자리한 국가등록문화재 제171호인 청전 이상범 가옥과 화실. 1930년대 누하동을 비롯해 경복궁 서쪽 지역에 형성됐던 문화예술인의 도시형 한옥 건물로, 청전 선생이 1972년에 작고할 때까지 43년간 거주한 곳이다. 청전 이상범 화백은 동양화가로 한국화의 거장이라고 불릴 만큼 근현대 시대의 동양화를 이끈 동양화단의 스승이며 한국인이 사랑하는 산수화가다. 가장 뭉클한 그의 업적은 바로 동아일보 미술 담당 기자 시절, 동양인 최초로 마라톤에서 우승을 손에 거머쥔 손기정 선수와의 일화다. 그는 올림픽 기사 사진 중 손 선수의 가슴에 있던 일장기를 슥 지웠다. 지워진 일장기 때문에 고문을 당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고 전해진다. 그런 청전 선생의 삶을 반영하는 작품의 영감과 순간이자 작가가 거쳐온 시간과 공간의 생생한 증언인 이 가
옥은 ‘ㄷ’자 형태로 마루부터 안채, 사랑채, 화실까지 모두 연결되는 구조다. 실제 청전 선생이 쓰던 미술 도구가 놓여 있고 물감도 굳은 채 그대로 있다. 그리고 지금은 먼지 쌓여버린 고서가 가지런히 정돈 돼 있다. 입장료는 없으며, 내부에서도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 주소 :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31-7
인왕산 대충유원지
대충유원지의 시작은 사실 연남동이었다. 인왕산 자락 아래서 시작하려고 했으나 마음에 드는 공간이 없어 연남동에서 먼저 터를 잡은 것. 이곳은 활기차고 동적인 연남동의 대충유원지와는 메뉴 구성부터가 다르다. 연남동은 통통 튀고 캐주얼한 느낌이라면, 이곳 대충유원지는 좀 더 정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가구 역시 모두 자체적으로 제작해 같은 제품을 썼지만 색감을 달리해 다른 분위기를 냈다. 인왕산 대충유원지에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고 모두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주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카페에 들어서면 인왕산의 위엄과 정기를 새삼 느낄 수 있다. 그 밑으로 보이는 한옥의 기와지붕들이 분위기를 더한다. 대충이라는 뜻은 대강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한자어로 호랑이라고도 한다. 카페의 중심이 되는 인왕산은 본디 호랑이가 웅크린 형국의 산이라는 수식어를 가졌다. 이러한 인왕산을 뒤로한 채 바리스타가 반가이 손님을 맞는다. 카페의 가구나 기물, 구성, 바리스타의 움직임까지 모두 한 편의 수묵화 같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깥 풍경을 배경 삼아 손님들은 커피와 술, 그리고 분위기를 즐긴다.
▒ 주소 :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46 4층
▒ 전화번호 : 070-7807-5640
▒ 운영시간 : 매일 12:00~23:00
풍류관
카페 스펙터의 두 번째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 풍류관. 이번에는 경복궁역에서 더 들어와 누하동 뒷골목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픈한 지 막 1년이 된 풍류관은 이름 그대로 풍류를 즐겼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시작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가장 한국스러운 동네에 커피나 와인, 디저트 같은 서양의 것들을 채워보고자 했다. 옛날 시골 할머니 집에서나 볼 법한 오브제들로 공간을 꾸미고 더욱 동양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조도를 낮췄다. 건물 외관도 옛날 주택을 그대로 살렸다. 마당에는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했는데,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들이 잠시 앉아 담소를 나누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풍류관은 서촌이라는 동네에 잘 스며들어 동네 주민들과도 상생하고 소통하고 있다. 더욱 재미있는 건 디저트 메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만추, 월광 등 디저트 이름이 눈길을 끄는데, 커피뿐만 아니라 와인과도 잘 맛이 잘 어우러진다. 만추의 경우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밤이나 단풍잎 등 가을 하면 떠오르는 재료를 모티프로 근사한 디저트를 만들었다. 월광은 요즘 트렌드인 크로플과 무화과 그리고 부라타치즈를 앞쪽에 배치해 달이 빛나는 것처럼 보여 작명했다. 풍류관에서는 어느 한곳에 집중하기보다 흘러가듯 안에 채워진 모든 것들을 즐기길 바란다.
▒ 주소 :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5나길 20-12 1층
▒ 전화번호 : 010-7923-0006
▒ 운영시간 : 매일 13:00~21:00